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주 공방전 (문단 편집) === 이후 === 나레이션에 따르면, '왕건과 견훤은 이 나주를 두고 여러번 싸웠으나, 견훤이 1번 이긴 것을 제외하면 왕건이 모두 이겼다.'라고 언급했으며, 2차 나주 공방전 이후 양 군은 소강상태에 머물면서 군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왕건은 이후 며칠 더 나주에 머무르다가 철원으로 올라가 시중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세력을 점점 넓히게 되었으나 종간과 궁예의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나주로 내려가 머물기도 하였다. 그리고 왕건이 역성혁명으로 궁예의 태봉 정권을 무너뜨리고 [[고려]]를 건국하고 나서, 역사상으로는 [[공산 전투]] 이후 2년 뒤 [[후백제]]가 일시적으로 나주를 빼앗으나 극에서는 그런 모습은 안 나오며, 그 후 한동안 잊혀졌다가 신검의 반란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아끼던 아들 금강까지 잃은 견훤이 [[금산사]]를 탈출해서 고려로 망명할 때 이곳 나주를 거쳐간다. 견훤을 호송한 박영규의 심복들은 나주로 개명된 줄 몰랐던 견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며 백제인들도 어느 틈에 금성을 나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알려주며, 이때까지 고령으로 살아있던 오다련과 나주 태수[* 이전에는 이 나주 태수를 '종례'라고 적혔지만, 배우가 종례 역을 맡은 서상익 씨일뿐 자막에는 나주 태수로만 적혀있었다. 그리고 당시 오다련은 고려 건국 이후 광평성의 원로로서 중앙에 들어왔다가 후계 문제로 인해 충주의 유긍달과 함께 물러나 향리로 있었다.]의 배웅을 받자 오다련과 많은 인연이 있었다면서 과거 군관으로 들어온 옛날을 회상한다. 이후 상귀의 백제 함대가 견훤을 태운 유금필의 고려 함대를 막자 견훤이 직접 호통을 치며 백제 함대들이 스스로 길을 비키게 만드는 위엄을 과시하며 [[일리천 전투]]의 결과를 암시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